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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바오로 6세의 담화에 의한 십자가의 길

작성자 수산나(ip:)

작성일 2008-09-04 12: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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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교황 바오로 6세의 담화에 의한 십자가의 길

제 1 처. 예수, 사형 선고를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날이 밝자 곧 대사제들은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을 비롯하여 온 회의를 소집하고 의논한 끝에 예수를 결박하여 빌라도에게 끌고 가 넘겼다. 명절 때마다 총독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마치 그때 반란을 일으키다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갇혀 있던 폭도들 가운데 바라빠라는 사람이 있었다. 군중은 빌라도에게 몰려가서 전례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달라고 요구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유다인의 왕을 놓아 달라는 것이냐?"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대사제들이 예수를 시기한 나머지 자기에게까지 끌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빌라도의 말을 들은 대사제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빠를 놓아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빌라도는 다시 군중에게 "그러면 당신들이 유다인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군중은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빌라도가 "도대체 이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요?"하고 물었으나 사람들은 더 악을 써 가며 "십자가에 못박으시오!"하고 외쳤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하게 하게 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 주었다(마르15,1-6-15).

십자가 사건의 극적인 전말을 명상하려 할 때, 우리는 자기 삶의 경험을 완전히 다 접어 두고 명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삶의 크고 중대한 문제들이 그곳에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 죄악, 죽음, 용서의 절실한 필요, 희망의 보장... 일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모든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사건들과 상황들은 예수의 십자가와 연관되고 십자가 속에서 해답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역사의 중심점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뢰심의 원천인 것입니다.

- 1965,4,4. 삼종기도 훈화 -

 

기도합시다.

오, 하느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순간의 십자가를 힘차게 지고 가며 당신이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본받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2 처. 예수, 십자가를 지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영광스럽게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가9,23-26).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가까이 나아가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지만, 그렇다고 인간 생명에 내재하고 있는 고통들까지 모두 면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이런 우리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남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구원적 고통이 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하고 속죄하고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특별한 힘을 입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초대를 모른 체해서는 안됩니다. "나의 제자가 되고 참으로 나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1977.4.8.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은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새벽부터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으니, 우리 지난날의 추악한 죄악들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다시는 그런 죄악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소서. 당신은 세세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3 처. 예수 기진하시어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죽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 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이사53,4-6).

수난 당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피흘리시며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이 우리들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질 수 있도록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들이기로 합시다. 우리를 당혹시키는 그분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젖어 들기로 합시다. 너무도 잔혹하고 처참한 십자가의 고통이 당시 구경꾼들과 신앙인들의 가슴속에 자아냈던 공포심과 동정심에 우리도 깊이 동참하기로 합시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헛된 것이(1고린 1,17)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늘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로 해서 그 잔혹성과 치욕의 깊은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1968.4.12.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오 주여, 당신의 자녀들로 하여금 십자가의 지혜를 깨닫게 하시고, 당신 아드님의 수난을 비추임을 받아 그분의 달콤한 멍에를 기꺼이 지고 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며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4 처. 예수와 성모 서로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주 야훼의 사람 다함없고 그 자비 가실 줄 몰라라. 야훼께서는 당신을 바라며 찾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신다. 주님의 구원을 침묵 중에 기다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애가 3,22.25-26).

시므온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가 2,34-35,51).

우리는 십자가의 길의 각 처마다, "아 너희들은 주님의 상처들의 나의 가슴에 각인(刻印)되게 하는구나"라고 탄식하며 비탄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돈나에게 청하는 간절한 호소를 반복해야 합니다. 이 각인은 대체 어인 연고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성처들을 묵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단 말입니까? 그분 자신이 우리를 두고 온통 흡족해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십자가를 지셨는데, 어째서 아직도 우리 자신이 또 그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입니까? 주님께서는 고통을 구원의 수단으로 삼으셨습니다. 물론 그분은 당신의 고통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그분의 것과 결합시킴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 1967.3.24.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오 하느님, 당신은 십자가에 달라신 당신 아드님과 함께 하시며 또한 고통을 통해 그 어머니를 그분께 결합시키셨으니,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는 교회로 하여금 언젠가는 또한 그분의 부활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5 처.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짐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갔다. 그때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올라오다가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병사들은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끌고 골고타라는 곳으로 갔다. 골고타는 해골산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포도주에 몰약을 타서 예수께 주었으나 예수께서는 드시지 않았다(마르 15,20-23).

주님께서 겪으신 수난의 구원적 능력은 만백성에게 보편적인 효력을 미칠 수 있고, 따라서 우리의 모든 고통 속 깊이 내재(內在)할 수 있습니다. 즉 수난으로서의 '함께 아파함'이 작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을 끌어 올려 성화시키고 그것을 완전히 구세주의 고통 속에 용해시켜 하나가 되게 해줍니다.

- 1964.3.27.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오 하느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끝까지 당신 아드님의 모범을 따름으로써 이 땅에 정의와 평화의 결실들을 거둘 수 있게 하소서. 주는 세세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6 처. 베로니까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씻어 주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어둠에서 빛이 비쳐 오너라'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당신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2고린 4,6).

이 백성은 괴로움을 참다못해 마침내 나를 애타게 찾으리라. "어서 야훼께로 돌아가자!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며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그분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 그러니 그리운 야훼님 찾아 나서자"(호세 5,15-6,3).

예수께서는 고통을 받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갖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들을 이미 당신의 백성이 된 사람들과 함께 결합시키고 당신의 십자가로써 이 세상에 베푼 바로 그 구원의 힘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 1,24).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구원 능력이 우리에게도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바라고 사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은 실제로 인간의 모든 고통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입니다.

- 1965.4.16. 성금요일 담화 -

 

기도합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당하셨으니, 각자의 행위를 봉헌하는 우리를 굽어보시고, 우리들의 생애 전체가 당신 구원의 표지요 증거가 되게 해주소서. 당신은 세세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7 처. 기력이 쇠하신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이사 53,3-4).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우리 죄 때문에 돌아 가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이 극적인 십자가 사건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저 사람들과 도덕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마땅히 공동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전혀 무죄한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해서 죄를 입으셨습니다"(2고린 5,21) 그분은 우리의 죄와 벌을 온통 뒤집어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에 대한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자신의 피로 우리들의 추악함을 대속하는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아드님의 피와 죽음에 책임이 있습니다.

- 1968.4.12.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오 하느님, 당신은 어처구니없는 십자가 사건 속에서 당신의 지혜의 신비를 교묘히 드러내셨으니, 우리로 하여금 당신 아드님의 수난 속에서 영광을 볼 수 있게 해주시고, 그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언제까지나 희망과 평화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게 하소서. 그분은 천주로서 세세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8 처. 예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뒤따랐는데 그 중에는 예수를 보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들을 돌아보시며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과,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하고 젖을 빨려 보지 못한 여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가 이제 올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산을 보고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할 것이며, 언덕을 보고 '우리를 가려 달라'고 할 것이다. 생나무가 이런 일을 당하지 든 마른나무야 오죽하겠느냐?"하고 말씀하셨다(루가 23,27-31).

"그분을 보고 울며 통곡하던" 여인들(루가 23,27)처럼 우리도 가슴을 찢는 단말마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십자가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르기로 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셨을지를 어림해 보기로 합시다. 저 잔혹하고 모멸적인 십자가 위의 못박히심은 물론, 무죄한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서 참을 수 없는 치욕의 형벌을 받으셔야 했던 영적인 괴로움에 이르기까지 깊이 묵상하기로 합시다.

- 1968.4.12.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오 하느님, 십자가 위의 어린양의 피로써 새로워진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온갖 죄악에서 해방되어 언제나 구원의 길로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9 처. 예수,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고를 고쳐 주었구나.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 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이사 53,5-6).

주님의 수난이 교회 속에서 빛을 발산하게 되는 것은 그 수난에 대한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이라는 증거를 통해서만은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웅적이고도 한없이 관대한 태도가 그리스도인들을 비추어 그분을 추종하도록 만드는 모범이 되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신앙인들을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신비스럽게 동화시키는 성사적인 일치 때문만도 아닙니다. 주님의 수난은 그리스도의 제자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쇄신되고 재생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총체인 교회 공동체 전체 안에서 재현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인류의 역사 안에 연장된 것이기에, 주님의 수난은 결국 영속하는 것입니다.

- 1969.4.24.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오 하느님, 당신의 아드님을 낮추셔서 타락한 인류를 다시 끌어 올리셨으니, 당신께 충실한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기쁨을 새로이 맛볼 수 있게 해주시고, 죄악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에 참여할 수 있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10 처. 악당들이 예수의 옷을 벗김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마침내 그들은 예수를 못박았다. 그리고 주사위를 던져 각자의 몫을 정하여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예수의 죄목을 적은 명패에는 "유다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다. 예수와 강도 두 사람도 십자가형을 받았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달렸다(마르15,24-27).

고통 당하시는 예수가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첫 번째 이유는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극도의 고통을 겪으며 돌아가시면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 하나 하나와 맺으시는 연대감, 동류 의식, 공감 때문일 것입니다. 그분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음과 같은 그분의 너무도 인간적인 초대를 다시 듣는 것 같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11,28). 우리는 모두 비록 그 정도와 방식은 다를지라도, 예외 없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를 당신에게로 부르시는

"고통을 아는 사람"(이사 53,3)의 초대에 귀를 기울이기로 합시다. 고통은 이 세상에서는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이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는 접촉점이 되고 일치의 촉매가 되는 것입니다.

- 1971.4.9.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은 '어둠이 세상을 뒤덮고 있던' 여섯 시에 우리의 구원을 위한 무죄한 희생자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니, 사람들을 영생의 길로 이끄는 빛을 언제나 우리에게 비추어 주소서. 당신은 세세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11 처. 악당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음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하하, 너는 성전을 헐고 사흘 안에 다시 짓는다더니, 십자가에서 내려와 네 목숨이나 건져 보아라"하고 모욕하였다. 같은 모양으로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도 조롱하며 "남은 살리면서 자기는 살리지 못하는구나! 어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나 보자. 그렇게만 한다면 우린들 안 믿을 수가 있겠느냐?"하고 서로 지껄였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들까지도 예수를 모욕하였다(마르 15,29-32).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모습이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나의 잘못들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에 마땅한 빚을 스스로 떠맡으신 것이라면, 나는 그분의 피에 책임이 있고, 나는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사랑하셨고 나 때문에 희생하신 것이다"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래서 기뻐하며 감사와 사랑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다른 사람의 선익을 위해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세상의 구원과 평화를 위해서, 우리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 1970.3.27.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회개한 오른편 강도에게 십자가로부터 당신 왕국의 영광으로 들어가게 하셨으니, 잘못을 깊이 통회하며 고백하는 불쌍한 우리를 굽어보시고, 우리에게도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주소서. 당신은 세세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12 처. 예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낮 열두 시가 되자 온 땅이 어둠에 덮어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세 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거기에 서 잇던 사람들 몇이 이 말을 듣고 "저것 봐!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는구나"하였다. 어떤 사람은 달려오더니 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 끝에 꽂아 예수의 입에 대면서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봅시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마르 15,33-37)

이제 그분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그분은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로부터 자비의 샘이 솟아 나와, 우리에게는 물론 모든 사람에게도 용서받고 구원되었다는 더없이 값진 선물이 주어집니다.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전례(典禮)를 따라 주님의 잔혹한 수난을 두고 "복되다"고 일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수난은 바로 우리의 재생의 샘이요 우리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 1968.4.12.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당신은 당신 아드님의 수난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으니, 당신의 교회로 하여금 당신에게 살아 있는 거룩한 제물을 바치게 하시고, 언제나 충만한 당신 사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13 처. 제자들이 예수의 성시를 십자가에서 내리움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날이 이미 저물었다. 그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기 때문에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용기를 내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었고 하느님 나라를 열심히 대망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말을 듣고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백인대장을 불러 그가 죽은 지 오래 되었는가 물어 보았다. 그리고 백인대장에게서 예수가 분명히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시체를 요셉에게 내어 주었다(마르 15,42-45).

이제 예수님은 무력함의 극한 상태 속에서, 그의 인간적 실패 속에서, 그의 "비폭력'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다름 말씀이 떠오릅니다. "당신의 권능으로 그대를 지어내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연약함 곧 당신의 수난을 통해서 그대를 재창조, 다시 말해 구원해 주셨습니다."이 말씀은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구원하고자 한다면, 귀기울일 값진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 구원은 물질적인 힘이나 복수, 폭력, 전쟁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복음이 가르치는 명백히 수동적인 힘, 즉 가난, 겸손, 착한 마음, 희생 등 한마디로 십자가를 통해서 이룰 수 있습니다.

- 1969.4.4.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 당신은 당신 외아드님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내어 주셨으니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고통들과 하나가 되어 삶으로써 언젠가는 그분의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은 세세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14 처. 예수,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 ◎ 주의 십자가로...

요셉은 시체를 내려다가 미리 사 가지고 온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모신 다음 큰돌을 굴려 입구를 막아 놓았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를 모신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마르 15,46-47).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 죽으셨고 아니 살해되셨고 묻히신 그분에게 귀를 기울이고, 혹시 아직도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더 하고 싶어하시는 것은 아닌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무덤이 적막하고 신비스러운 절대적 침묵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분이 아직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겠다"(마태11,28). 이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진실된 말씀이고, 행복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고통 당하다 사람인 그대에게 말씀을 건네고 계십니다. 헛수고와 재난으로 점철된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그대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병든 그대에게, 가난한 그대에게, 소외된 그대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울고 있는 그대에게, 저주하지 않으려고 웃고 있는 그대에게, 절망하여 할 말을 잃은 그대에게 여린 음성으로 들려 주고 계십니다. 그대에게 말을 건내고 그대를 부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고통의 사람', 고통을 아는 그분이십니다.

- 1972.3.31. 십자가의 길 담화 -

 

기도합시다.

오 하느님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당신 아드님의 죽으심과 묻히심에 대한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그분과 더불어 새 생명으로 부활하게 해주소서. 주는 세세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의 기도 ◎ 어머니께 청하오니...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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